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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심상정, 용접공이 된 서울대생의 선택 그리고 결별의 정치

by jjun's second life 2025. 5. 9.

심상정, 많은 이들에게는 진보 정치의 상징이자 정의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국회의원이 아닌 한 명의 노동자, 그리고 시대와 맞선 운동가로서의 궤적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녀가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도 병원이 아닌 공장으로 향한 이유,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시대가 그녀에게 강요한 진실 앞의 응답입니다.

용접하는 심상정 국회의원

차 례

1. 고도성장 이라는 이름의 착취

1970년대와 80년대는 한국 사회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빠르게 산업화를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출 주도형 산업정책, 외자 유치 등으로 나라 전체는 분주했고, 지도자들은 ‘근면·자조·자립’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 기적의 뒤편에는 무너진 인간의 삶, 혹사당한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 하루 14시간 이상, 주 6일 이상 근무

청계천의 재봉틀 노동자부터 울산의 조선소 노동자까지, 대부분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것이 당연했으며, 휴일도 없고, 초과수당도 없고, "쉬면 잘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묶여 살았습니다.

▪ 산업재해와 죽음

조선소와 제철소, 건설현장에서는 산재로 손가락, 눈,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보상은커녕 해고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산재 신청? 회사에 누를 끼치는 관심사원이 되는 길이고, 바로 해고 1순위입니다.

▪ 여성 노동자의 현실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은 절반. 생리휴가 요구하면 ‘불순분자’, 결혼하면 퇴사, 임신하면 해고, 커피심부름에 물 심부름 까지 당연히 여자가, 당시 여성 노동자는 **‘손 빠르고 조용한 존재’**로만 취급받았습니다.

 

2. 서울대 간호학과 졸업생, 왜 용접공이 되었나

1980년대 초, 심상정은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인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병원에서의 안정된 길을 걷지 않고,
인천, 부천의 공장에 위장 취업해 실제 용접공으로 일하며 여성노동자들과 숙식하며 똑같이 일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심상정의 회고:

“어느 날, 노동자들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스스로 묻기 시작했어요.
임금명세서를 받고 한숨 쉬는 언니들, 기계에 손이 찢긴 친구, 임신했다고 짐 싸는 동료를 보며,
'이걸 그냥 공부만 더 해서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그녀는 현장을 보며, 제도 바깥에서 아무리 글을 써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입니다.
이 안에 들어가서, 안에서부터 싸우자.

 

3. 민주노조는 불법, 노동자는 범죄자

당시 정부는 "노조는 있어도 투쟁하면 안 되고, 있어도 회사 편이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사측과 결탁된 어용노조만이 활동할 수 있었고,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민주노조’는 즉각 해산됐습니다.

이를 시도한 이들은:

  • 회사에서 해고
  • 경찰서 또는 안기부로 끌려감
  • 구속, 수배
  • 가족도 불이익

💥 특히 심상정은 **‘부천 수사대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했던 일은 단지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한 것, 민주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도운 것이 전부였습니다.

 

4.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과 심상정

심상정이 운동가로 나아가게 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는 항상 전태일의 분신을 기억했습니다.

1970년, 평화시장 봉제공장이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가 남긴 말,

“나는 사람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는 심상정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신념이 됐다.

그녀는 전태일이 죽음을 통해 외쳤던 것을, 삶을 통해 증명해내는 길을 택했습니다.

 

5. 노동자에서 정치인으로, 그러나 본질은 같다

그녀는 이후 국회의원이 되고, 대선 후보가 되고, 당대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자리에 있어도, 늘 현장과 거리두지 않겠다는 신념을 고수해왔습니다.

  • 비정규직 문제: 용역·하청·플랫폼 노동자의 권리를 꾸준히 발언
  • 산재법 개정: "중대재해는 인재이자 기업 범죄"라고 주장
  • 차별금지법, 여성고용 보호법 등 약자의 권리를 위한 입법 노력

정치는 커졌지만, **심상정은 그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노동운동을 계속한 사람"**이다.

 

6. 그리고 결별: 김문수와의 갈라선 길

1980년대, 심상정에게는 함께 투쟁하던 운동권 동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바로 김문수가 있습니다.

  • 김문수 역시 서울대 출신으로 위장 취업을 감행했던 노동운동가
  • 1980년대 중반까지 민주노동자회 등에서 함께 활동
  • 인천지역 노동자 조직화에 함께 헌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7. 김문수의 변신, 심상정의 고집

항  목 심상정 김문수
정치 노선 진보주의, 사회민주주의 보수주의, 자유시장경제
정당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 → 정의당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중심 가치 노동, 인권, 평등, 복지 기업 자유, 안보, 반공주의
사회 인식 불평등 해결이 우선 시장 활성화가 성장의 열쇠
 

김문수는 1990년대 보수정당(한나라당)에 입당하며 노동운동가에서 보수 정치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합니다.

심상정은 이에 대해

“김문수는 더 이상 노동자 편이 아니다. 너무 멀리 가버렸다.”
고 말하며 철학적 결별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김문수 역시

“진보좌파는 국가를 망친다. 심상정은 위험한 급진 세력이다.”
라며, 한때 동지를 정면 비판했다.

8. 단지 두 사람의 갈등이 아니다

이들의 결별은 개인 간의 정치적 의견 차이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겪어온 이념의 분화, 양극화의 축소판입니다.

  • 한 사람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현실정치와 타협하지 않았고,
  • 한 사람은 현실정치에 들어가 ‘성장과 안보’를 이유로 그 권리를 접었습니다.

 

9. 마무리: 시대를 함께 했지만, 서로 다른 미래를 택한 사람들

심상정과 김문수는 같은 시대에 같은 꿈을 꿨던 동지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심상정은 노동자와 약자의 편에 남았고,
김문수는 보수와 권력의 길을 택했습니다.

둘의 갈라선 길은
"어떤 세상을 바라는가"에 따라 사람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지금, 여전히 누군가는 심상정에게서
**“노동자의 딸”, “정치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